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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작업실에 방송 장비를 다 채워 넣었다가 결국 다 뺐다

처음엔 다 갖춰야 할 것 같았다

지인들에게 영상 작업 좀 해보겠다고 큰소리치고 시작한 게 벌써 몇 달 전이다. 드라마 작가 공모전 준비도 해야 하고, 가끔 홍보 영상 제작 업체 쪽에서 들어오는 간단한 편집 일을 하다 보니 집에 있는 노트북 하나로는 도저히 답이 안 나왔다. 처음엔 소박하게 시작하려고 했다. 마이크 하나에 조명 하나면 되겠지 싶었는데, 이게 참 이상하다. 하나를 사면 그게 또 다른 장비를 부르는 기분이다. 결국 나는 핀조명을 사고, 사운드 엔지니어링을 공부하겠답시고 중고 스피커까지 덜컥 구매해버렸다. 예산은 한정되어 있는데 욕심만 앞섰던 것 같다. 대충 30만 원 정도를 더 들여서 오디오 인터페이스까지 갖추고 나니, 이제야 좀 ‘방송국 흉내’는 낼 수 있겠다 싶었다.

집 안의 티비와 인터넷 환경이 복병이었다

장비 세팅보다 더 괴로웠던 건 의외로 유선 티비와 와이파이 환경이었다. 방송을 모니터링하려면 지상파 방송 신호가 깨끗하게 들어와야 하는데, 우리 집은 왜 그렇게 채널이 오락가락하는지 모르겠다. 셋톱박스를 바꾸고 통신사에 전화해서 와이파이 속도를 체크해달라고 몇 번을 실랑이했는지. 상담원분은 친절했지만 내 짜증 섞인 말투를 다 받아주기엔 역부족이었을 거다. 한 달에 4만 원가량 내는 인터넷 요금이 이렇게 아깝게 느껴진 적이 없다. 모니터에 화질이 뭉개져서 나올 때마다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건가 싶었다. 전문가들이 쓰는 스튜디오 환경을 흉내 내려고 했지만, 기초적인 환경이 받쳐주지 않으니 모든 게 사상누각이었다.

중고 스피커는 애물단지가 되었다

결국 제일 처치 곤란이 된 건 야심 차게 들여놓은 중고 스피커였다. 상태가 아주 좋다는 말만 믿고 15만 원을 입금했는데, 막상 설치해보니 미세하게 잡음이 섞여 있었다. 사운드 엔지니어가 꿈은 아니었지만, 소리가 깔끔하지 않으니 편집 작업 자체가 스트레스가 됐다. 좁은 작업실에 핀조명 열기에 스피커 덩치까지 더해지니 여름도 아닌데 방 안 온도가 2도는 올라가는 느낌이다. 결국 스피커는 방 한구석으로 밀려났고, 지금은 먼지만 쌓여가고 있다. 다시 팔려고 해도 귀찮아서 그냥 두는 중인데, 보고 있으면 한숨만 나온다.

홍보 영상 제작을 하려다 도망칠 뻔했다

작은 홍보 영상 하나를 작업하는데, 조명 하나 세우고 티비랑 컴퓨터 연결해서 싱크 맞추는 것만 3시간이 넘게 걸렸다. 영상 하나 제작하는 것보다 장비랑 씨름하는 시간이 더 길어지는 주객전도 상황이 반복되니 현타가 왔다. 내가 하고 싶은 건 이야기를 쓰는 건데, 왜 전선 정리에만 매달려 있었을까. 결국 지금은 조명도, 복잡한 연결 장치도 다 치워버렸다. 그냥 단순하게, 가장 기본만 남기기로 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그냥 처음부터 장비 렌탈을 고려했을 것 같다. 한 달에 얼마씩 내고 필요한 장비만 딱 빌려서 쓰고 반납하면 될 것을, 왜 그렇게 다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 안달이었는지 모르겠다.

장비가 실력을 대변해주지는 않더라

드라마 공모전 준비는 장비랑 아무 상관이 없었다. 노트북 하나에 키보드만 있으면 되는 것을. 오늘 문득 작업실을 정리하다 보니, 내가 얼마나 불필요한 것들에 시간을 쏟았는지 실감이 났다. 여전히 방송 장비 렌탈샵 목록을 스마트폰 즐겨찾기에 넣어두긴 했다. 필요하면 언제든 다시 빌리면 그만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다시 빌리게 될 것 같지가 않다. 그냥 지금은 조용한 방에서 글만 쓰고 싶다. 남들은 스튜디오를 꾸미고 전문적인 장비로 채우며 즐거워하는데, 나는 오히려 다 비우고 나니 이제야 좀 작업에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 마음이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이대로 조금 더 버텨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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