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가볍게 시작했던 가전 렌탈
몇 달 전이었나, 정수기를 새로 바꾸려고 알아보다가 덜컥 렌탈 계약을 해버렸다. 처음에는 일시불로 사기엔 초기 비용이 부담스럽기도 했고, 매달 3만 원 정도면 커피 몇 잔 안 마시는 셈 치면 되겠지 싶었다. 사실 그때는 제휴 카드니 뭐니 할인 조건을 다 따져보면 밑지는 장사는 아니라는 계산이 섰던 것 같다. 그런데 이게 시작이었다. 공기청정기에 식기세척기까지, 하나둘씩 렌탈 품목이 늘어나더니 어느새 매달 빠져나가는 금액이 월세 수준이 되어버렸다.
200만 원 렌탈료 기사를 보고 든 생각
얼마 전 TV를 보다가 어떤 부부 사연이 나왔는데, 남편이 생활비는 안 주면서 렌탈료로만 한 달에 200만 원 넘게 쓴다는 내용을 보고 멍해졌다. 나도 모르게 가계부를 들춰봤다. 나 정도는 아니지만, 렌탈료로 나가는 돈이 꽤 컸다. 누군가는 렌탈이 현명한 소비라고 하고, 또 누군가는 결국 할부와 다를 바 없다고 한다. 요즘은 하이마트 렌탈이나 청호나이스 같은 곳에서 네이버 브랜드데이 때 3개월 면제 혜택도 많이 준다던데, 그런 걸 챙기지 못하고 제값 다 내고 있는 내 모습이 갑자기 좀 억울하게 느껴졌다.
상담 전화는 왜 이렇게 어려운가
렌탈을 해지하거나 조건을 변경하려고 고객센터에 전화를 하면 꼭 긴 기다림이 시작된다. 예전에 옆커폰 같은 곳은 오프라인 매장이 많아서 직접 방문 상담도 된다던데, 내가 계약한 곳은 그런 오프라인 거점도 딱히 보이지 않는다. 상담사와 통화가 연결되기까지 10분은 기본이다. 막상 연결되면 위약금 이야기가 바로 튀어나온다. 지금 해지하면 설치비에 철거비까지 든다는데, 이게 맞나 싶다. ‘그냥 쓰자’ 하고 전화를 끊고 나면 다음 달에 또 똑같은 금액이 빠져나가는 걸 보며 한숨을 쉰다.
편리함 뒤에 숨은 애매한 불편함
렌탈의 장점은 분명 관리를 알아서 해준다는 거다. 필터 교체 시기가 되면 알아서 문자가 오고, 엔지니어가 방문한다. 그런데 이 방문 일정을 맞추는 것도 일이다. 집을 비우기 어려운 주말에는 예약이 꽉 차 있어서 평일 오후로 잡아야 하는데, 그러면 꼭 연차를 쓰거나 급하게 조퇴를 해야 한다. 겨우 관리받고 나면 또다시 렌탈료 결제 문자가 날아온다. 이 순환이 반복되니 내가 정수기를 빌린 건지, 정수기가 나를 부리는 건지 헷갈릴 지경이다.
돈을 더 내고 편함을 산 것일까
가끔은 그냥 중고로 사서 필터를 직접 갈아버릴까 하는 생각도 한다. 계산기를 두드려보면 진작 샀어야 했다는 결론이 자꾸 나온다. 하지만 이미 약정 기간이 절반은 지나갔고, 이제 와서 위약금을 물고 해지하기엔 또 아깝다. 렌탈 마케팅은 정말 교묘하다. 54만 포인트 지급이니, 반값 할인이니 하는 숫자들이 눈을 멀게 만든다. 막상 내 돈이 통장에서 빠져나가는 건 눈에 띄는데, 혜택으로 돌아온다는 건 포인트로 찔끔찔끔 들어오니 체감이 잘 안 된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지금 당장은 이 굴레에서 벗어날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다음번 가전이 필요할 때는 절대 렌탈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막상 내일 당장 새로운 제품을 사야 한다면 렌탈 사이트를 기웃거릴지도 모르겠다. 렌탈이 정말 합리적인 선택인지, 아니면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한 거대한 함정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남편이 200만 원씩 쓴다는 그 사연 속의 답답함이 조금은 이해가 갈 것 같다. 당장 이번 달 결제 예정 내역을 확인하니 또 머리가 지끈거린다.

정수기 빌리는 거랑 같이 느껴져요. 관리해주시긴 하지만, 결국은 계속해서 돈이 나가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