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를 정리하지 않고 이사부터 나왔을 때의 막막함
결국 일이 이렇게 되고 말았다. 전 남자친구와 동거를 정리하면서 가장 골치 아픈 게 가구가 아니라 이런 렌탈 제품들이라는 걸 그때는 왜 몰랐을까. 사실 헤어질 때는 당장 그 공간에서 벗어나는 게 급해서 정수기랑 비데 명의 변경 같은 건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그냥 가방 하나 들고 나온 게 전부였으니까. 그런데 몇 달이 지나고 나니 슬슬 문제가 터지기 시작한다. 휴대폰으로 자꾸만 ‘미납 요금 독촉’ 문자가 날아오고, 급기야 추심 경고장까지 날아오니 마음이 덜컥 내려앉는다. 웅진이나 코웨이 정수기 같은 거, 월 3만 원대니까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쌓이니까 꽤 부담스럽다. 제휴카드 할인 혜택도 내가 안 쓰니 의미가 없고, 그냥 매달 꼬박꼬박 위약금만 쌓여가는 기분이다.
정수기 렌탈 해지하려다 마주한 현실
어제는 큰맘 먹고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상담원 목소리는 너무나 차분한데, 내 명의로 된 정수기를 해지하려면 결국 내가 직접 모든 서류를 챙겨야 한다는 사실이 나를 더 지치게 했다. 제품 설치된 곳에 지금은 다른 사람이 살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제품 회수 일정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막막하다. 예전에 쓰던 그 좁은 빌라 주방에 놓여있던 정수기 사이즈가 꽤나 컸던 걸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기억조차 흐릿하다. 사실 엘지 듀얼 정수기나 삼성 전자 정수기처럼 요즘 나오는 예쁜 제품들로 새로 계약할까 고민도 했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일단 이 얽힌 실타래부터 풀어야 하는데, 명의 변경을 안 하고 나온 내가 바보 같다는 생각만 든다.
방문 관리가 오히려 족쇄가 될 줄이야
웰스 매니저가 주기적으로 방문해서 관리해주는 시스템이 처음에는 참 편했다. 집이 비어있어도 알아서 물 갈아주고 점검해주니까 신경 쓸 게 없었지. 그런데 지금은 그 ‘정기 방문’이라는 게 나한테는 공포가 됐다. 기사님이 방문하시겠다고 전화가 오면 ‘저 거기 안 살아요’라고 말해야 하는 상황이 얼마나 어색한지 모른다. 이 렌탈료가 월 3만 5천 원 정도인데, 이게 1년이면 40만 원이 넘는다. 제품을 쓰지도 않는데 꼬박꼬박 돈을 내야 하는 이 상황이 너무 답답하다. 친구는 그냥 위약금 다 물고 해지해버리라고 하는데, 그 위약금 액수가 만만치가 않다. 대략 20만 원에서 30만 원 사이라는데, 지금 당장 생돈을 날려야 한다는 게 너무 속 쓰리다.
다시 돌아간다면 렌탈은 절대 안 할 것 같다
가끔 유튜브에서 무설치 정수기 광고를 보면 마음이 흔들린다. 그냥 내가 직접 필터 갈고 물 떠다 먹는 게 훨씬 속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렌탈은 계약 기간이 보통 3년에서 5년인데, 그동안 내 인생이 어떻게 바뀔지 누가 알겠나. 이사 한 번에, 사람 한 번 바뀌는 거에 이렇게까지 엮일 줄 알았으면 애초에 렌탈을 안 했을 텐데. 렌탈료 할인 프로모션이니 지원금이 어쩌고 하는 광고 문구들이 이제는 하나도 눈에 안 들어온다. 그냥 내 소유인 물건이 최고다. 지금 나는 정수기 철거 일정을 잡기 위해 다시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어야 하는데, 그 통화 버튼을 누르기가 왜 이렇게 무거운지 모르겠다. 오늘 오후에는 기필코 전화를 걸어 마무리해야지, 마음만 먹고 벌써 며칠째 미루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