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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컥 시작해버린 가전 구독 생활의 뒷모습

처음에는 월 납입금이 적어 보여서 솔깃했다

거실에 덩그러니 놓인 공기청정기를 볼 때마다 요즘 들어 드는 생각이다. 굳이 사지 않고 렌탈이라는 걸 해봤는데, 처음 마음은 단순했다. 일시불로 몇십만 원씩 나가는 게 부담스러웠고, 그렇다고 당장 싼 걸 사자니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아서였다. 딜라이브나 요즘 흔한 대기업 가전 구독 서비스들이 여기저기서 눈에 띄던 시기였으니까. 마침 에너지 효율 1등급 제품을 찾으면 나중에 환급받을 수 있다는 정보도 보이고, 월 몇만 원이면 커피 몇 잔 아끼면 되겠다는 안일한 계산이 머리를 스쳤다. 그렇게 덜컥 신청 버튼을 눌렀던 게 화근이라면 화근일까. 사실 계약서를 꼼꼼히 읽어보기보다는 ‘제휴 카드 할인’이라는 문구에 더 눈이 갔던 게 솔직한 심정이다. 전월 실적을 채우면 할인이 된다는데, 막상 써보니 그 실적 채우는 게 또 다른 숙제처럼 느껴지는 건 왜일까.

생각보다 신경 쓸 게 많은 자동 이체와 관리

렌탈을 시작하면 알아서 관리해주고 편할 줄 알았는데, 막상 집에 낯선 기사님이 방문하시는 일정을 조율하는 게 생각보다 귀찮은 일이었다. 처음에야 와서 필터 갈아주고 청소해주니 대접받는 기분이 들었지, 시간이 좀 지나니까 그냥 내가 직접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게다가 결제 카드를 중간에 바꾸거나 실적 조건이 꼬여서 할인이 안 된 달에는 괜히 생돈 나가는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상담 센터에 전화해서 해결하려니 연결되는 데만 10분, 상담원과 통화하며 설명하는 데 또 10분. 차라리 그냥 내 거 사서 내가 알아서 닦고 썼으면 이 정도 스트레스는 아니었을 텐데 싶었다. 피오렌탈이나 채움렌탈 같은 곳에서 제공하는 혜택들이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시스템 안에 묶여 있다는 느낌이 들 때마다 괜히 시작했나 싶기도 하다.

소유한다는 것과 빌려 쓴다는 것의 모호한 경계

한번은 친구가 와서 보더니 이건 네 거냐고 묻길래 얼버무린 적이 있다. 딱히 대단한 자산도 아닌데 내 소유가 아니라는 사실이 묘하게 자존심을 건드린 걸까. 어차피 3년, 5년 지나면 소유권이 이전된다고는 하지만 그 기간 동안 나가는 총비용을 따져보면 일시불보다 훨씬 비싸다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달 빠져나가는 금액이 작으니 당장은 괜찮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는 거다. 가끔은 삼성전자나 LG전자에서 나오는 구독 서비스 광고를 보며, 차라리 가전뿐만 아니라 침대나 테이블 같은 가구까지 렌탈로 돌리면 집안을 다 빌려 쓰는 셈이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하기도 한다. 상조 가입할 때 현금 지원해준다는 문구를 보듯, 렌탈 업체들끼리 사은품을 얼마나 주느냐를 따지는 것 자체가 사실은 렌탈의 본질이 아니라 ‘어떻게든 당장 목돈을 안 쓰려는 몸부림’이 아닌가 싶어서 씁쓸해지기도 하고.

해지 고민이 시작되는 시점의 찝찝함

이제 1년 조금 넘게 썼는데, 벌써부터 중도 해지를 고민하고 있다. 위약금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지금 그만두는 게 오히려 손해라는 결론이 나오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기계는 그냥 작동만 하면 되는 건데, 왜 나는 이 기계를 관리받기 위해 매달 통장을 들여다봐야 하는지. 처음엔 스마트한 소비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냥 내 주머니를 조금씩 갉아먹는 구독의 늪에 빠진 것만 같다. 기계는 생각보다 멀쩡하고 성능도 나쁘지 않아서 불만은 없는데, 그냥 그 ‘관계’ 자체가 피로하다. 다음에 가전이 필요하면 그땐 무조건 사야지, 하는 다짐을 매달 납입일마다 하고 있다. 그런데 웃긴 건, 막상 결제 문자가 오면 ‘그래, 이번 달도 필터값 냈다고 치자’라며 스스로 합리화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굴레를 언제쯤 벗어날 수 있을지, 아니면 그냥 이게 요즘 시대의 당연한 살림 방식인 건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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