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룸 싱크대 좁은 공간에 생수병 쌓아두는 게 질려버린 순간
생수를 매번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먹었는데, 이게 문 앞에 쌓여있는 것도 스트레스고 무엇보다 분리수거할 때 페트병 라벨 떼고 찌그러뜨려서 내놓는 게 보통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좁은 원룸이라 싱크대 옆에 2리터짜리 6개들이 묶음을 두 세 개만 놔도 발 디딜 틈이 없어 보였다. 가끔 물이 뚝 떨어졌을 때 편의점까지 무겁게 들고 오는 것도 한두 번이지, 무릎도 아프고 해서 결국 정수기를 들여야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원룸 전세라 벽을 뚫거나 싱크대에 구멍을 크게 내는 건 집주인 눈치가 보였다. 게다가 정수기 업체 직원분이 주기적으로 방문해서 관리해 주는 것도 나같이 평일에 집 비우는 직장인에게는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었다.
렌탈 관리원 부르는 게 불편해서 자가설치형 무전원 직수기를 알아봤다
방문 케어 서비스가 없는 렌탈이나 아예 기계를 일시불로 사서 직접 설치하는 자가설치형 직수정수기 쪽으로 눈이 돌아갔다. 요즘은 퓨리얼이나 쿠쿠 같은 데서 자가설치 키트를 같이 보내주기 때문에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후기들이 가득했다. 전기도 안 먹는 무전원 미니정수기라면 크기도 작아서 싱크대 한구석에 쏙 들어갈 것 같았다. 대충 가격을 비교해 보니 대기업 직수정수기 렌탈은 보통 3년 약정에 한 달에 2만 원 중후반대였는데, 자가설치형 제품은 기기값 10만 원대에 필터 1년 치가 포함되어 있어서 비용 면에서도 훨씬 이득인 것처럼 보였다. 미세플라스틱이니 뭐니 하는 뉴스도 자주 보여서 필터 성능도 꼼꼼히 확인하려 했지만 사실 기술적인 용어들은 봐도 잘 모르겠고 그냥 대충 거르는 단계가 많으면 좋겠거니 싶었다.
싱크대 아래 호스 밸브를 열다가 온통 물바다가 된 기억
인터넷으로 주문한 자가설치 키트 박스가 도착했을 때까지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렌치 하나 들고 싱크대 하부장을 열어 급수 밸브를 잠갔다. 원래 계획은 중간 어댑터를 끼우고 튜빙 선을 연결하는 아주 간단한 작업이어야 했다. 그런데 우리 집 싱크대 수전 어댑터가 너무 오래되어 굳어 있었는지 렌치로 돌려도 꼼짝을 안 했다. 억지로 힘을 주어 돌리다가 갑자기 퍽 소리와 함께 틈새로 물이 뿜어져 나왔다. 급수 밸브를 덜 잠갔던 모양이다. 순간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고 손으로 막았다가 바닥이 순식간에 물바다가 됐다. 젖은 걸레며 안 쓰는 수건을 다 꺼내서 바닥을 닦아내느라 정작 설치는 시작도 하기 전에 힘이 다 빠져버렸다. 한 시간 반 동안 좁은 싱크대 밑에 머리를 처박고 땀을 뻘뻘 흘린 끝에 겨우 호스를 연결했다.
필터 셀프 교체 주기와 매달 들어가는 실제 유지 비용 계산
우여곡절 끝에 설치를 끝내고 물을 한 컵 빼서 마셔봤는데, 솔직히 수돗물 냄새는 안 나지만 엄청나게 맛있는 물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심리적으로 안심이 되는 정도다. 이 자가설치 직수정수기는 4개월마다 1번 필터, 8개월마다 2번 필터, 12개월마다 3번 필터를 갈아줘야 하는 주기가 있다. 필터 세트 1년 치를 인터넷에서 따로 사면 약 45,000원 정도 든다. 기기 값을 제외하고 순수하게 필터 교체로 나가는 돈만 계산하면 한 달에 4,000원 꼴이다. 렌탈 업체를 썼으면 매달 2만 원 넘게 나갔을 텐데 확실히 돈은 아낀 것 같다. 하지만 주기에 맞춰서 달력에 표시해 두고 직접 필터를 갈아 끼우는 일 자체가 생각보다 큰 부지런함을 요구한다. 첫 4개월째 필터 갈 때가 되었을 때 귀찮아서 보름 정도 그냥 미뤘던 기억이 난다.
3년 약정 노예가 될 것인가 매번 2리터 생수 묶음을 배달시킬 것인가
원룸 계약 기간이 보통 1년이나 2년인데 정수기 렌탈의 기본 약정이 3년이나 5년인 경우가 많다 보니, 이사를 자주 다녀야 하는 입장에서는 렌탈 할인이니 사은품이니 하는 감언이설이 다 덧없게 느껴진다. 중간에 해지하면 위약금 물어내야 하고, 이사 갈 때 이전 설치비도 몇 만 원씩 깨진다. 그래서 결국 자가설치나 그냥 생수 사 먹는 두 가지 선택지로 좁혀지게 마련이다. 지금이야 어찌어찌 자가설치해서 쓰고 있지만, 나중에 방 빼고 나갈 때 이 어댑터를 원상복구 해놓아야 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귀찮음이 밀려온다. 혹시라도 호스 뺀 자리에 물이 새서 아래층에 누수라도 생기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도 아주 약간은 남아 있다. 남들은 다들 편하게 쓴다는데 나는 왜 이렇게 사소한 것에 신경이 쓰이는지 모르겠다.

생수 묶음들 때문에 공간이 너무 좁게 느껴지네요. 특히 분리수거까지 생각하면 더 힘들었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