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별생각 없이 시작했다
지난달에 사무실 환경을 조금 바꿔보겠다고 냉온수기를 하나 들였다. 이전까지는 그냥 수입 생수 350ml짜리를 대량으로 사다 놓고 마셨는데, 이게 은근히 플라스틱 쓰레기가 많이 나오는 게 눈에 거슬렸다. 매번 분리수거하러 나가는 것도 일이고, 바닥에 굴러다니는 빈 병들을 치우는 것도 이제 지겨워졌다. 그래서 적당한 크기의 냉온수기 렌탈을 알아봤다. 사실 요즘 이찬원 씨가 광고하는 브랜드도 있고 해서 익숙하긴 했는데, 뭐 엄청나게 고사양일 필요는 없겠다 싶어서 그냥 무난한 모델로 골랐다. 설치 비용은 대략 3만 원 정도 냈던 것 같은데, 기사님이 오셔서 씽크대 근처에 호스를 연결해주고 가셨다. 처음엔 렌탈료가 매달 2~3만 원씩 나가는 게 생수 사는 것보다 비싼 거 아닌가 싶었지만, 일단 편의성만 생각하기로 했다.
씽크대 주변이 갑자기 복잡해졌다
막상 정수기 호스를 연결하고 보니 씽크대 하부장이 난장판이 됐다. 제빙기 호스까지 엉키면서 정수기 호스랑 서로 꼬여버린 건데, 기사님이 가신 뒤에 물이 좀 새나 싶어 확인하다가 꽤 당황했다. 분명히 설치할 때는 깔끔해 보였는데, 안쪽을 들여다보니 호스가 너무 길게 늘어져 있어서 냄비나 프라이팬 꺼낼 때마다 걸리적거렸다. 직접 손을 좀 보려고 해도 이게 잘못 건드리면 물바다가 될까 봐 선뜻 손이 안 갔다. 그냥 대충 테이프로 호스 몇 개를 묶어서 벽 쪽으로 밀어 넣긴 했는데, 여전히 볼 때마다 좀 찜찜하다. 예전에는 그냥 생수병만 꺼내 마시면 그만이었는데, 갑자기 관리를 해야 하는 물건이 하나 늘어난 기분이라 살짝 후회가 되기도 했다.
차가운 물 한 잔 마시기가 왜 이렇게 복잡한지
어느 날 아침에 출근해서 물을 마시려는데 온수 버튼이 잠겨 있었다. 분명히 어제까지만 해도 잘 나왔는데, 이게 아이들 안전장치 같은 게 작동한 건지 아니면 내가 뭘 잘못 누른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한참을 낑낑대다가 설명서를 찾아봤는데, 작은 글씨로 된 매뉴얼이 어찌나 복잡하던지. 결국 해결은 했는데, 그 과정에서 쏟은 물을 닦아내느라 아침부터 바닥을 걸레질해야 했다. 기계라는 게 참 묘한 게, 그냥 놔두면 아무 일 없는데 굳이 신경 쓰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손이 간다. 요즘은 그냥 냉수 버튼만 누르는 것도 가끔은 기계가 응답을 안 할까 봐 조마조마하다. 원봉 같은 회사에서 만든 냉온수기가 공장 같은 데서는 튼튼하게 쓰인다던데, 사무실에서 쓰는 이런 슬림형은 어딘가 모르게 내구성이 불안하다.
중고 자판기를 고민했던 순간들
사실 냉온수기를 렌탈하기 전에 중고 자판기를 하나 들여놓을까도 심각하게 고민했었다. 예전에 알던 지인이 사무실에 자판기를 뒀는데, 그게 은근히 재미도 있고 관리는 번거로워도 나름 만족하면서 쓴다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고 자판기 가격이랑 매달 들어가는 유지비, 그리고 무엇보다 공간을 너무 많이 차지한다는 단점 때문에 포기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냉온수기가 훨씬 나은 선택이었던 것 같기도 한데, 가끔은 그때 자판기를 샀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뭘 선택했든 관리는 내가 해야 하는 몫이었을 텐데, 참 부질없는 고민이었다.
아직도 이게 최선인지 잘 모르겠다
벌써 한 달 넘게 쓰고 있지만, 여전히 이 냉온수기랑 친해진 느낌은 아니다. 씽크대에서 나온 호스들은 여전히 불안하게 연결되어 있고, 물 맛은 뭐 그냥 평범하다. 생수를 배달시켜 마실 때랑 비교하면 환경 보호를 한다는 자기만족은 좀 있는데, 정작 나는 매일 아침 기계가 잘 작동하는지 눈치를 본다. 렌탈 기간이 3년인데, 이거 나중에 이사 갈 때는 어떻게 분리해야 하는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그냥 물 마시는 게 이렇게까지 고려할 게 많았나 싶고, 때로는 그냥 예전처럼 생수 350ml짜리 박스째 쌓아두고 마시는 게 정신건강에는 더 좋았을 것 같기도 하다. 물론,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것 같지는 않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결정을 보류하고 싶은 마음이 남아있다.

자판기 고민도 이해가 되네요. 저도 비슷한 고민 한 적 있거든요. 특히 사무실 공간이 좁은 편이라 자판기 크기가 걱정되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