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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기 하나 바꾸려다 전화기를 하루 종일 붙들고 있었다

상담 전화 돌리다가 하루가 다 갔다

며칠 전부터 정수기 약정 기간이 끝났다는 문자가 계속 왔다. 사실 그냥 쓰던 걸 계속 써도 상관없을 것 같은데, 왠지 기계도 오래된 것 같고 필터 가는 것도 귀찮아져서 새로 바꿀까 싶어 검색을 시작했다. 예전에는 그냥 대리점 가서 눈으로 보고 골랐던 것 같은데, 요즘은 무슨 구독 서비스니 렌탈이니 너무 복잡하더라. 어디는 월 3만 원대고 어디는 제휴 카드 쓰면 반값이라고 하는데, 그 ‘조건’이라는 게 너무 많아서 머리가 아팠다. 결국 고민하다가 상담 전화를 몇 군데 돌려보기로 했는데, 이게 화근이었다. 오전 10시에 시작한 상담이 점심시간을 넘기고 오후 3시가 다 되어서야 끝났다. 상담원분들은 다들 친절하셨지만, 막상 내 상황에 딱 맞는 조건을 찾으려니 한 곳은 팩토링 이야기가 나오고, 다른 곳은 저신용 관련 가전 렌탈 상품을 안내하겠다고 해서 당황했다. 나는 그냥 물만 잘 나오면 되는데 왜 이렇게 복잡한지 모르겠다.

롯데렌터카 광고 보고 든 생각

상담 대기 중에 TV에서 롯데렌탈 T car 광고가 나오길래 멍하니 봤다. 침수차면 전액 환불에 500만 원 보상까지 해준다는 내용이었는데, 예전엔 차를 렌트한다는 게 참 거창한 일처럼 느껴졌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굳이 소유하지 않아도 필요한 기간만큼 쓰는 게 훨씬 합리적일 때가 많은데 말이다. 정수기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3년 뒤에 이게 내 것이 되는 것도 아니고, 사실상 계속 빌려 쓰는 건데 왜 이렇게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지 좀 웃기기도 했다. 울산 단기 임대 사무실 알아볼 때도 그렇고, 요즘은 정수기부터 자동차, 심지어 로봇청소기까지 안 빌리는 게 없는 세상이 된 것 같다.

무형상품 상담 예약의 함정

어디 쇼핑몰을 들어갔더니 상담 예약만 해도 경품을 준다고 떠 있길래 무심코 신청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게 다 여행, 렌탈, 상조까지 묶여 있는 무형상품 상담 예약이더라. 로봇청소기 한 대 받아보겠다고 개인정보를 다 넘기고 전화까지 예약한 내가 좀 한심했다. 사실 정수기 렌탈을 하려는 이유도 그냥 편하게 관리받고 싶어서인데, 상담 전화 자체가 이렇게 스트레스가 될 줄이야. 홈쇼핑에서 상담 예약 남기는 게 쉽지 않다. 방송 알림 설정하고 시간 맞춰 전화받는 것까지, 이건 뭐 물건을 빌리는 건지 아니면 내가 상담원이 되어가는 건지 구분이 안 갈 정도였다.

SK인텔릭스 같은 기업은 어떻게 일할까

문득 렌탈 시장이 참 거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뉴스에서 SK인텔릭스가 주방가전 렌탈 위주로 사업을 한다고 봤던 기억이 난다. 로봇청소기도 그렇고, 이제는 건강 상담까지 해주는 플랫폼으로 진화한다고 하니 세상이 정말 빠르게 변하는 것 같다. 그런데 그런 대기업 플랫폼을 이용해도 결국 상담 예약하고 기다리는 과정은 다 똑같은 건 아닐까? 가끔은 장애 아동 보조기기 렌탈 사업처럼 정말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시스템이 잘 돌아가는 게 훨씬 중요해 보이는데, 왜 나는 정수기 하나 바꾸는 데 이렇게 에너지를 쏟고 있나 싶다.

결정하지 못한 채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결국 상담만 서너 군데 받고 정수기는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했다. 한 곳은 필터 교체 주기가 마음에 안 들고, 한 곳은 디자인이 우리 집 싱크대랑 안 어울릴 것 같고, 또 다른 곳은 약정 기간이 너무 길었다. 사실 별 차이 없을 텐데 말이다. 그냥 내일 다시 천천히 생각해보자 하고 전원을 껐다. 가끔은 이렇게 아무것도 정하지 않고 고민만 하다가 시간이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고민이 길어지니 오히려 정말 필요한 게 뭔지 조금은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아까 상담원분이 해준 말이 기억에 남는다. 렌탈은 ‘빌리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사는 것’이라고 했던가. 뭐 그 말도 맞는 것 같긴 한데, 일단 당장은 정수기 걱정보다 저녁에 뭐 먹을지가 더 고민이다. 내일 다시 전화기 붙들고 씨름할 생각을 하니 벌써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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