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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컥 렌탈을 시작했다가 계약서만 서랍에 박아둔 이야기

한 달에 몇 만 원이라는 계산의 함정

처음에는 그냥 가볍게 생각했다. 매달 나가는 통신비 정도만 더 내면 최신형 공기청정기와 건조기를 다 들일 수 있다는 계산이 섰을 때만 해도 그랬다. 사실 처음에는 삼성전자나 LG전자 공식 대리점에 가서 사려고 했다. 그런데 막상 가서 가격표를 보니까 한 번에 내야 하는 목돈이 좀 부담스럽긴 하더라. 옆에서 직원이 계속해서 ‘요즘은 사는 것보다 구독하는 게 대세’라며 렌탈 서비스 구조를 설명하는데, 그게 꼭 합리적인 소비인 것처럼 들렸다. 월 3만 원대, 그러니까 하루에 커피 한 잔 값도 안 된다는 그 마케팅 문구에 너무 쉽게 넘어간 것 같다. 집에 돌아와서 비에스온 같은 렌탈 비교 사이트들을 괜히 기웃거린 게 화근이었다. 정작 계약하고 나니 매달 25일에 빠져나가는 자동이체 알림이 생각보다 훨씬 더 신경 쓰인다.

설치 기사님과 마주한 어색한 30분

제품이 도착하던 날, 엘지헬로비전 렌탈을 통해 신청했던 기사님이 방문하셨다. 에어컨 설치 사고 뉴스를 본 적이 있어서 그런지, 실외기 위치를 잡는 기사님의 뒷모습을 보는데 괜히 마음이 불편하더라. 이게 일회성 서비스가 아니라 계속 관리를 받아야 하는 시스템이라 그런지, 기사님도 본사 직원이라기보다는 엠제이더비즈 같은 협력업체 소속으로 보였다. 설치 자체는 금방 끝났는데, 정작 렌탈 계약의 실체는 기사님이 떠나고 나서부터 시작되었다. 제품 자체는 새것인데, 내가 내는 돈은 5년 동안 기계의 주인이 바뀌지 않는 일종의 ‘장기 대여’라니. 문득 내가 이 물건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려고 이렇게 꼬박꼬박 돈을 내는 건지, 아니면 그냥 잠깐 빌려 쓰면서 관리비 명목으로 더 큰 비용을 지불하는 건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반납할 때의 귀찮음을 생각하면

지금 제일 걱정되는 건 나중에 계약이 끝났을 때다. 보통 3년에서 5년 사이를 계약하는데, 렌탈료 총합을 계산해 보면 그냥 카드 할부로 사는 게 훨씬 쌌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하이마트 렌탈 상담을 받을 때도 느꼈지만, 이 사람들은 렌탈 기간이 끝나고 나서 반납하는 게 귀찮으니까 그냥 제품을 인수하거나 재계약하라고 유도할 게 뻔하다. 요즘은 바디프랜드 같은 곳들도 앱을 통해 계속 건강관리 플랫폼이니 뭐니 하면서 생태계를 묶어두려 애쓰던데, 솔직히 나는 그냥 가전제품 하나 편하게 쓰고 싶은 것뿐이다. 가끔 프린터가 고장 나거나 정수기 필터를 갈아야 할 때, 서비스 센터에 연락해서 또 언제 올지 모를 기사님을 기다려야 하는 그 과정을 상상하면 벌써 피곤하다.

정말 소상공인들이 많이 쓰나 궁금해졌다

뉴스 기사를 보니 소상공인 10명 중 3명 이상이 기기 렌탈을 이용한다고 하더라. 솔직히 그 마음은 이해가 간다. 당장 가게 문을 열어야 하는데 냉장고나 선반 기계, 테이블 같은 걸 다 사려면 초기 비용이 너무 크니까. 그런데 나는 개인 소비자인데도 왜 이런 구조에 갇혀버린 건지 모르겠다. 가전제품 렌탈이라는 게 사실은 소비자의 편리함을 가장한 기업의 매출 극대화 전략이라는 사실을, 계약서에 마지막 사인을 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친구들은 ‘너만 호구 된 거야’라고 놀리지만, 이미 자동이체는 걸려 있고 나는 3년 뒤를 기약하며 오늘도 공기청정기를 묵묵히 돌린다. 가끔씩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이게 내 것인지 남의 것인지 헷갈리는데, 그냥 잊고 사는 게 정신 건강에 좋을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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